본문 바로가기
🌍 해외생활 정보

독일 개발자의 기록 #3 - 결국 독일에서 4주의 병가를 받았다

by 슬레발 2026. 7. 22.
반응형
2편에서 적었듯이, 퇴사합의서를 거절한 이후 내 업무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진행되는 보고 미팅, 예고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갑작스러운 화면 공유 요청, 퇴사와 관련된 반복적인 미팅, 그리고 계속되는 함정질문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업무량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불안감이었다.


경고장은 끝이 아니었다

1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같은 날 두 장의 경고장(Abmahnung)을 받은 상태였고, 당시에는 경고장이 계속 누적되면 결국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영주권 신청까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특히 첫 번째 경고장에는 내가 기억하는 실제 상황과 다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불안했다.

이번에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경고로 기록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두 장의 경고장을 한번에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점점 커져 갔다.

 


회사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회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업무 자체가 아니라, 언제 또 다른 경고장이 나올지, 언제 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될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해고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나는 업무를 하면서도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없는지 반복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메일을 보내기 전에도 여러 번 다시 읽었고,

타임로그를 작성한 뒤에도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없는지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그렇게 확인을 반복해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퇴근 후에도 회사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결국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면제를 먹고도 밤에 여러 번 깨는 일이 반복되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몸 상태 역시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정신적으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들도 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서 설명할 수 없는 몸의 불편한 감각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에 집착하기도 했다.

 

아침에는 출근 생각만으로 속이 메스꺼워졌고 실제로 출근 전 구토를 한 적도 있었다.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같은 시기 집주인으로부터도 퇴거 통보(Kündigung)를 받은 상태였다.

직장 문제와 주거 문제 그리고 체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 역시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기록하고, 더 열심히 설명하고, 더 실수하지 않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몸이 먼저 무너졌다

어느 날 보고 미팅이 끝난 뒤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 순간 갑자기 귀에서 강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린 뒤에도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Hausarzt를 찾게 되었다.

병원에서 혈압을 측정했을 때 수치는 169를 가리키고 있었다.

 

의사는 내 상태와 최근 몇 달 동안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나는 경고장과 퇴사합의서, 그 이후 반복되었던 보고 미팅,

그리고 계속된 긴장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의사는 내 상태를 걱정했고 회복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직장 내 스트레스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진단서를 작성해 주었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고 조언해주었다.

 

병원을 방문한 이후에도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면 150~160mmHg 이상의 수치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당시에는 왜 혈압이 이렇게 높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진단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독일에 와서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집을 구해야 했고, 언어를 배워야 했고,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했고, 영주권도 준비해야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정말 괜찮은 상태인가?'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를 참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길을 걷다가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병가와 복귀를 반복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상태가 악화되었고,

병가를 내면 조금 회복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겪고 있던 일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알지 못했지만, 회사에서는 이미 여러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모회사의 인수 이후부터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반응형

댓글